도산신문 -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애국자는 대개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감정적 애국자요, 또 하나는 책임적 애국자외다. 감정적 애국자라 함은 다만 정으로써 나라를 애모하며 따라서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원하는 자요, 책임적 애국자라 함은 그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이 물론 감정적 애국자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애국심이 감정에 그치기 않고 그 국가의 사업을 자기의 일로 담책(擔責)하고 주인의 직분을 다하는 자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26년 상하이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흥사단 단우회 모임에서 '책임적 애국자'라는 내용으로 한 연설의 한 부분입니다. 당시 흥사단 단우 신두식의 필기로 보존되어 있던 것을 미주에서 오랫동안 흥사단 활동을 한 곽림대가 흥사단본부에 보낸 <안도산>이란 긴 원고 가운데 '도산의 연설과 언론'에 들어 있던 글입니다. 도산 선생과 의형제를 맺었던 의사 김필순(1880~1922)은 1908년 세브란스의학교(제중원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7인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졸업 후 의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한글로 번역한 서양의 의학 서적들은 대학이나 간호원 양성소의 교과서로 사용되었
도산신문 -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우리의 권능은 세 가지가 있소. 그 셋째는 더욱 세계의 항구적 평화를 돕고자 함이오. 우리가 신공화국을 건설하는 날이 동양 평화가 견고하여지는 날이오. 동양 평화가 있어야 세계 평화가 있겠소. 이러한 권능이 우리에게 있는 고로 하늘이 우리를 도우며, 동서의 인민이 우리를 동정하니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외다." 1919년 6월 28일, 도산 안창호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 내무총장에 취임하면서 행한 연설로 모든 국민이 스스로 주권을 찾고 모범적 공화국을 세워야 할 뿐만 아니라, 동양 평화와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우리의 권능은 세 가지가 있소. 그 둘째는 우리가 우리 주권만 찾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위에 모범적 공화국을 세워 이천만으로 하여금 천연의 복락을 누리려 함이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희생하여 이 목적을 달성하여야 하겠소." 1919년 6월 28일, 도산안창호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 내무총장에 취임하면서 행한 연설로 모범적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온 민족이 헌신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대조선국민군단은 1914년 6월 10일, 미국 하와이 오아후(Oahu)섬 아후이마누(Ahuimanu)농장에서 독립군 사관 양성을 목적으로 박용만(朴容萬)이 주도하여 만들어진 군사 교육 단체였습니다. 이는 도산 선생이 이끄던 대한인국민회의 연무부를 확대·개편한 것으로서 항일 무력 투쟁에 대비한 군대를 양성하기 위함이었으며, 운영 자금은 안원규·박종수 등이 파인애플 농장 등에서의 수익금을 기부해 마련했습니다. 1916년 10월에는 단원이 311명으로 늘어났으나 미국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승만이 군사 활동보다 외교 노선의 중요성을 강조한데다 박용만이 실전에 참가하기 위해 극동 지역으로 떠나면서 조직 유지가 어려워 1917년경에 해체되었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우리의 권능은 세 가지가 있소. 그 첫째는 내 물건을 내가 스스로 찾고 내 주권을 내가 찾자는 것이오. 우리가 우리 주권을 잃고 사는 것은 죽은 것만 못함이오. 그러므로 우리는 최후의 핏방울까지 흘려 이것을 찾아야 하겠소." 1919년 6월 28일, 도산 안창호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 내무총장에 취임하면서 행한 연설로 주권자인 국민이 스스로 주권을 찾기 위해 헌신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 해외에서 활약하던 신규식, 조소앙, 박용만, 박은식, 신채호 등 독립 운동가들이 해외 운동 단체들을 통합한 최고 기구를 조직하기 위한 민족 대회 소집을 제안하며 도산 선생에게 그 찬동 여부를 물었습니다.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지금 배울 기회 있을 때에 배우고 벌이할 기회 있을 때에 벌이하다가, 그보다 더 긴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다 나서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하므로 이 일이 그 운동에 관계가 없는가 하여 방황하고 주저하지 말 것이외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한국의 청년에게 준 글로 흥사단 기관지 <동광> 1927년 1월호에 소개된 '대한 청년의 용단력과 인내력'이란 글의 가운데 부분입니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하고 있는 도산공원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국 정신과 교육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시가 1971년에 기공식을 갖고 1973년에 완공한 근린 공원입니다. 이 공원 내에는 1998년 건립한 도산안창호기념관, 1973년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이장한 도산 선생의 묘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장한 부인 이혜련 여사의 묘소가 있으며, 도산 동상과 비석, 말씀 비, 지역 주민들을 위한 체육 시설과 산책로 등이 있습니다.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지금 동아시아의 큰 문제가 발생된 이때 우리의 운동을 일층 더 전개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욕심에 하고 싶은 것은 많고 또한 기회도 좋으나 일찍 준비한 것이 없었으므로 스스로 부끄럽고 분한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홍언(1880.2~1951.3)은 흥사단 창립 8도 대표(경기도)로 일제 강점기에 미주 한인 사회의 민족 운동을 이끈 독립 운동가입니다. 1904년 하와이로 이민해 대한인국민회의 중앙총회 부회장과 신한민보 주필을 지내며 교민 사회를 이끌었으며, 독립 운동 자금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1931년 11월 9일,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주에 있는 흥사단 창립위원 홍언에게 보낸 편지 중의 일부입니다. 그 해 9월 18일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도산 선생은 오래 기다리던 본격적인 항일 투쟁의 기회가 왔으나 우리에게는 아직 제대로 준비한 것이 없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